
남의 집을 짓는 마음
이종필 (자담건설 디자인실장, 노회찬의집 현장소장)
*인터뷰 진행‧정리 - 이강준 노회찬재단 사업기획실장
9천여 명의 시민이 함께 쌓은 ‘벽돌기금’ 위에 현장 노동자들의 땀과 손길이 더해져 마침내 ‘노회찬의집 6411’이 완공되었습니다. 새것과 번듯한 것 대신, 먼저 살던 이들의 손때와 땀 냄새를 그대로 보존하며 ‘사람 냄새 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는 이종필 현장소장님. ‘남의 일처럼 일하자’는 역설적인 원칙 속에 숨겨진 타인을 향한 깊은 배려, 그리고 그가 마주했던 창신동 리모델링 현장의 까다롭고도 가슴 벅찼던 순간들을 여러분께 전합니다.
지난 2018년 소장님께서는 ‘문익환 통일의집’ 복원을 총괄하시면서 “내 마음속에서 문 목사님의 사상을 복원했다”는 소회를 남기셨습니다. 이번에 ‘노회찬의집 6411’을 짓는 과정에서는 어떤 가치와 정신을 마음속에 새기며 작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문익환 목사님 댁을 복원할 때는 사실 정치에 특별히 관심을 두고 싶지 않을 때였죠.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주지 않으려고 했었어요. 목사님 댁 복원공사를 하면서 어렸을 때 제 마음에 있던 그런 정서들을 다시 복원했다는 의미로 그렇게 얘기했던 거였습니다.
이번에 노회찬의집 공사를 하면서 의원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다들 정치를 너무 무겁게 하시잖아요. 본인들이 뭔가 열심히 설명은 하는데, 실제로 듣는 사람들은 이게 무슨 소린지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고……. 그런데 노회찬 의원님께서 보여주셨던 거는 유쾌한 정치였어요. 그리고 소외된 분들을 대변해 주시는 모습을 보며 사실 참 훌륭하신 분이다,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노원구 상계동에 살 때였는데, 그때 노회찬 의원님이 선거에서 떨어지셨어요. 마음이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집에서도 ‘이거 우리 너무하는 거 아니냐?’라며 얘기했었는데……. 아무튼 제 마음속에서 노회찬 의원님은 아주 명랑하고 유쾌하게 정치를 해 주신 분이에요. 이번 공사를 하며 어렸을 때, 학생 운동할 때의 기억도 다시 새록새록 나면서 정치에 대한 제 생각도 많이 바뀌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노회찬의 유쾌하고 따듯한 정치를 그리워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공사하시면서 그런 느낌을 노회찬의집에 살리고 싶었던 부분이 있었나요?
저희는 공사를 하러 들어가면서 도면에 맞춰서 준비해요. 그런데 집을 하나씩 하나씩 걷어내다 보니 세월의 때가 보이고, 또 그걸 벗겨내면 또 다른 세월의 때가 나오고…… 그런 게 계속 반복되는 거예요. ‘이걸 다 베껴내면 리모델링 공사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새로 집을 짓는 게 낫지 않나?’ 공사를 진행하면서 중간중간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어요.
일단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집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집에 먼저 살았던 분들의 흔적도 어느 정도는 표현해 보고 싶었고, 또 그런 게 노회찬 의원님과도 잘 맞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새롭고 번듯한 걸 해놓는 게 아니라, 기존에 사람들이 살았던 그런 땀 냄새 같은 것도 좀 찾아서 남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샤워기나 창문, 손잡이처럼 손때 묻은 것들을 그대로 보존했습니다.
노회찬의집이 자리 잡은 창신동은 봉제 노동자들과 이주민들의 삶터입니다. 매일 새벽 6411번 버스를 타던 ‘투명인간’들의 숨결이 떠오르는 동네이기도 한데요. 현장소장로서 처음 이 오래된 2층 주택의 속살을 마주했을 때, 이 장소가 지닌 의미나 매력이 어떻게 다가왔나요?
처음에 얘기를 듣고 현장을 찾아왔지요. 첫인상이 굉장히 좋았어요. 일단 집 모양도 좋았지만, 그 주변의 올라가는 길 같은 것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사실 고등학교를 이 근처에서 나왔거든요. 도깨비시장이나 동대문운동장, 창신동 일대를 한 바퀴 삥삥 돌며 다니던 때였죠. 그 시절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놀기도 했던 곳인데, 그 골목들의 예전 모습이 조금씩 살아 있더라고요. 세월이 흘러 예전 모양 그대로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옛날 흔적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에 딱 봤을 때 붉은 벽돌과 자연스러운 담쟁이가 너무 잘 어우러져 있었어요. 그 첫인상이 사실 되게 좋았습니다. 원래 제가 제일 좋아하던 게 담쟁이가 있는 집이었거든요. 내부에 들어가서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마당의 나무들도 상태가 너무 좋아서 사실 되게 기뻤어요. 집을 보면서 ‘야, 이거 제대로 된 물건 하나 나오겠는데’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노회찬재단 홈페이지에 공사에 참여한 현장 노동자분들의 이름을 파트별로 빼곡히 기록했습니다. 보통 건물이 완공되면 현장 노동자들의 흔적은 감춰지기 마련인데, 이번 현장에서 함께 비바람을 맞으며 벽돌을 쌓고 미장을 하던 동료 노동자들의 노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얼굴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처음에 철거할 때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요. 1차 철거는 집을 알아가는 과정이죠. 그러니까 처음에 그 집을 알려면 이것저것 뜯어봐야 구조를 알 거 아니에요? 저희는 그냥 1차 철거라고 하는데요, 그걸 하고 나면 이제 도면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면서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있어요.
그런데 1차 철거를 하러 들어갔더니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요즘에는 쓰지 않는 옛날 단열재 같은 것들이 막 나오잖아요. 가령 배관을 짚으로 엮어서 단열을 하고, 그 위에다가 석회를 발라서 고정해 둔 그런 흔적들이 다 남아 있는 거예요. 철거할 때 작업자들이 그걸 발견하면 되게 기쁘게 저한테 막 들고 와요. “선생님, 이런 게 있습니다!” 하고요. (웃음)
그리고 기존 천장을 내리는데, 그 안에 예전에 채워둔 톱밥 단열재가 있었거든요. 너무 오래된 집이다 보니까 톱밥을 포장했던 종이봉투가 다 삭아버린 거예요. 그 양이 바닥에 내려놨을 때 거의 무릎까지 올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았어요. 천장에 가득 차 있던 걸 한 번에 내리다 보니, 나중에는 작업자분들이 톱밥을 온통 뒤집어쓰기도 하셨죠. 그런데 그분들이 싫어하는 기색 하나 없이 너무 잘해주시는 거예요. 참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사실 이런 리모델링은 답이 정해져 있는 공사가 아니에요. 목표점은 있지만, 모든 걸 현장 상황에 맞춰서 풀어가야 하거든요. 하나의 길만 있는 게 아니라서 여러 가지를 같이 공유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저와 거의 20여 년을 같이 일하신 분들도 계시는데, 그렇다 보니 제가 ‘이건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라고 툭 던지면 그분들이 알아서 척척 정리해 주십니다. 그런 점이 참 편하고 좋죠.

노회찬은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꿈꿨습니다. 거친 건설 현장을 책임지시는 소장님만의 원칙이나 마음가짐이 있었을까요?
저는 사실 예전부터 작업하시는 분들한테 농담 삼아 하는 얘기가 있었는데요, 저는 ‘내 일처럼 일하라’는 말을 되게 싫어합니다. (웃음) 저는 제 일은 대충대충 하거든요. 왜냐하면 나 혼자 다 책임지면 되니까 오히려 그게 더 편해요. 내 일은 하다가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고, 더 하고 싶으면 더 해도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나한테 주어진 다른 사람의 일은 ‘남의 일’이 되잖아요. 저는 그래서 사람들이 남의 일을 더 열심히 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늘 ‘남의 일처럼 일하자’고 말합니다. 사실 제 집을 직접 짓기도 했었는데, 그때 누가 와서 ‘야, 네 집이니까 정말 잘 짓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대충 했어요. 가령 창문도 어디서 주워다가 그 사이즈에 맞춰서 대충 벽을 뚫고 달았죠. (웃음) 저랑 오래 일하셨던 분들은 호흡이 잘 맞아서, 정말 이 ‘남의 일처럼’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해 주십니다.
그리고 예전에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할 때도 직원들에게 항상 하던 얘기가 있어요. 직원들에게 인테리어는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거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예쁘고 세련되게 하는 게 좋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그런데 저는 직원들에게 ‘다음 사람이 잘 다룰 수 있도록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다음 사람이 편하게끔 만드는 것, 인테리어도 결국 배려예요. 건축주를 배려하든, 찾아오는 손님들을 배려하든 그 배려를 잘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게 디자인적으로도 좋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보다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먼저여야 해요.
못을 하나 박더라도 얕게 박을지 깊게 박을지 고민하게 되거든요. 제가 지나가다 못에 살짝 찔리는 건 상관없지만, 남이 찔리면 그건 문제가 되잖아요. 그래서 남이 찔리지 않게 하는 그런 배려가 중요합니다.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그다음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는 게 좋을까’를 많이 생각하라고 해요. 배려도 일종의 ‘남의 일’을 대하는 태도니까요.
노회찬의집은 9천 명이 넘는 시민들이 후원해주신 ‘벽돌기금’으로 지어졌고, 그것을 현장 노동자들의 손으로 직접 쌓아 올렸습니다. 시민들의 ‘마음’과 노동자들의 ‘기술’이 만난 셈인데요. 소장님이 보시기에 이 집의 어떤 구석이나 마감에서 이러한 따뜻한 ‘만남의 흔적’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을까요? 방문객들이 유심히 봐주었으면 하는 포인트가 있다면요?
저희가 리모델링을 하면서 예전 집의 벽체나 천장 같은 곳들을 그대로 살린 부분들이 많아요. 기존 것을 살린다는 게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놔두는 게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예전 벽을 그대로 살린다고 하면, 일을 안 한 게 아니라 오히려 새로 세우는 벽보다 훨씬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벽을 갈아내기도 해야 하고, 먼지도 털어내고, 조금씩 깎아내면서 불안한 부분들을 정리해야 하죠. 또 약한 부분들은 덧대서 보강도 해줘야 해요.
그래서 지금 남아 있는 벽돌이나 천장 부분을 보시면 요즘에는 잘 안 쓰는 옛날 흔적들이 되게 많습니다. 천장 같은 곳도 보면 거푸집을 대서 만들었던 송판 자국이 그대로 있어요. 사실 지금 그렇게 작업하려면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서, 요즘은 그냥 일반 합판을 붙여서 끝내거든요. 그런 소소한 재미들이 여기저기 구석구석 숨어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1층에서부터 쭉 올라가다 보면 과거부터 현재까지 건물의 역사랄까, 공사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보여요. 1층은 거의 옛집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새것과 헌것이 함께 어우러진 중간 단계이고, 3층에 올라가면 온전히 새로운 공간이 펼쳐지죠. 그런 변화를 한 번씩 느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 노회찬의집은 청소노동자, 봉제노동자, 이주노동자, 그리고 수많은 ‘6411 투명인간’들이 비바람을 피해 편히 쉬어가고 서로 연대하는 공간으로 쓰이게 됩니다. 현장의 마지막 불을 끄고 나오신 소장님으로서, 이 공간을 가득 채울 시민들과 이 집을 함께 땀 흘려 지어준 동료 노동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사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인간관계가 매끄러운 편은 아니었어요. 사람들한테 약간 까다롭게 구는 면이 많거든요. 제가 일을 하면서 이것저것 귀찮게 많이 굴고 요구 사항도 많았는데, 대부분 그걸 정말 묵묵하게 다 이해해 주시고 따라주셨습니다. 사실 너무 고마워요.
그리고 어떤 분들은 저희 팀원이 아닌데도, 제 친구 같은 사람들이 자기도 와서 돕고 싶다며 실제로 자원봉사를 하러 오신 분들이 꽤 있었어요. 그래서 노회찬의집을 지은 노동자들 명단을 다시 한번 잘 정리해서 재단에 드리려고 해요. 지나가며 툭 한마디씩 보태주는 것도 봉사고, 잠깐씩 무거운 걸 같이 들어주는 것도 다 봉사잖아요. 그중 어떤 분은 자기가 와서 꼭 힘을 보태고 싶다며, 직장을 다니니까 주말에만 와서 조금씩 일하면 안 되냐고 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특히 설계해주신 분들께도 감사해요. 시공과 설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잖아요. 시공팀은 설계를 바탕으로 일하니까요. 사실 현장에서는 설계팀과 시공팀 사이에 조율 과정에서 갈등이 굉장히 많을 수 있어요. 설계하시는 분들은 자기 의도대로 안 나오면 속상하고, 시공팀은 현장 현실과 맞지 않는 도면이 나오면 난감하니까요. 결국 현장에 나와서 직접 보고 하나씩 해결해야 하는데 서로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번 설계팀은 그런 부분을 정말 잘 조율해 주셨어요. 그래서 되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장에 자주 나오셔서 다 이해해 주시고, 서로 상의해가며 고쳐나갔던 그 과정들이 참 좋았습니다.
끝으로 노회찬의집을 이렇게 짓고 나서 드는 지금의 마음, 혹은 이 공간을 이용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노회찬 의원님 때문에 제 생애 처음으로 ‘나도 정당 가입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나서 혼자 운 적이 있습니다. ‘가입하겠다는 약속도 못 지켰는데 벌써 돌아가셨네’ 하면서요……. 노회찬 의원님은 저한테 정말 소중한 정치인 중 한 분이셨고, 마음 깊이 존경하는 분입니다. 정말 겸손하게 서민들한테 다가가고, 가식 없는 그 모습들이 참 좋았습니다.
노회찬의집도 누구나 와서 노 의원님을 추억하며 그냥 편하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며칠 전 가봤더니 동네 주민 한 분이 편하게 커피를 마시고 계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는데 제 마음이 참 좋았습니다. ‘노회찬의집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참 잘해주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냥 누구나 편하게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벽도 없는, 문이 있지만 언제나 열려 있는 ‘문이 없는 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남의 집을 짓는 마음
이종필 (자담건설 디자인실장, 노회찬의집 현장소장)
*인터뷰 진행‧정리 - 이강준 노회찬재단 사업기획실장
9천여 명의 시민이 함께 쌓은 ‘벽돌기금’ 위에 현장 노동자들의 땀과 손길이 더해져 마침내 ‘노회찬의집 6411’이 완공되었습니다. 새것과 번듯한 것 대신, 먼저 살던 이들의 손때와 땀 냄새를 그대로 보존하며 ‘사람 냄새 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는 이종필 현장소장님. ‘남의 일처럼 일하자’는 역설적인 원칙 속에 숨겨진 타인을 향한 깊은 배려, 그리고 그가 마주했던 창신동 리모델링 현장의 까다롭고도 가슴 벅찼던 순간들을 여러분께 전합니다.
지난 2018년 소장님께서는 ‘문익환 통일의집’ 복원을 총괄하시면서 “내 마음속에서 문 목사님의 사상을 복원했다”는 소회를 남기셨습니다. 이번에 ‘노회찬의집 6411’을 짓는 과정에서는 어떤 가치와 정신을 마음속에 새기며 작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문익환 목사님 댁을 복원할 때는 사실 정치에 특별히 관심을 두고 싶지 않을 때였죠.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주지 않으려고 했었어요. 목사님 댁 복원공사를 하면서 어렸을 때 제 마음에 있던 그런 정서들을 다시 복원했다는 의미로 그렇게 얘기했던 거였습니다.
이번에 노회찬의집 공사를 하면서 의원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다들 정치를 너무 무겁게 하시잖아요. 본인들이 뭔가 열심히 설명은 하는데, 실제로 듣는 사람들은 이게 무슨 소린지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고……. 그런데 노회찬 의원님께서 보여주셨던 거는 유쾌한 정치였어요. 그리고 소외된 분들을 대변해 주시는 모습을 보며 사실 참 훌륭하신 분이다,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노원구 상계동에 살 때였는데, 그때 노회찬 의원님이 선거에서 떨어지셨어요. 마음이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집에서도 ‘이거 우리 너무하는 거 아니냐?’라며 얘기했었는데……. 아무튼 제 마음속에서 노회찬 의원님은 아주 명랑하고 유쾌하게 정치를 해 주신 분이에요. 이번 공사를 하며 어렸을 때, 학생 운동할 때의 기억도 다시 새록새록 나면서 정치에 대한 제 생각도 많이 바뀌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노회찬의 유쾌하고 따듯한 정치를 그리워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공사하시면서 그런 느낌을 노회찬의집에 살리고 싶었던 부분이 있었나요?
저희는 공사를 하러 들어가면서 도면에 맞춰서 준비해요. 그런데 집을 하나씩 하나씩 걷어내다 보니 세월의 때가 보이고, 또 그걸 벗겨내면 또 다른 세월의 때가 나오고…… 그런 게 계속 반복되는 거예요. ‘이걸 다 베껴내면 리모델링 공사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새로 집을 짓는 게 낫지 않나?’ 공사를 진행하면서 중간중간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어요.
일단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집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집에 먼저 살았던 분들의 흔적도 어느 정도는 표현해 보고 싶었고, 또 그런 게 노회찬 의원님과도 잘 맞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새롭고 번듯한 걸 해놓는 게 아니라, 기존에 사람들이 살았던 그런 땀 냄새 같은 것도 좀 찾아서 남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샤워기나 창문, 손잡이처럼 손때 묻은 것들을 그대로 보존했습니다.
노회찬의집이 자리 잡은 창신동은 봉제 노동자들과 이주민들의 삶터입니다. 매일 새벽 6411번 버스를 타던 ‘투명인간’들의 숨결이 떠오르는 동네이기도 한데요. 현장소장로서 처음 이 오래된 2층 주택의 속살을 마주했을 때, 이 장소가 지닌 의미나 매력이 어떻게 다가왔나요?
처음에 얘기를 듣고 현장을 찾아왔지요. 첫인상이 굉장히 좋았어요. 일단 집 모양도 좋았지만, 그 주변의 올라가는 길 같은 것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사실 고등학교를 이 근처에서 나왔거든요. 도깨비시장이나 동대문운동장, 창신동 일대를 한 바퀴 삥삥 돌며 다니던 때였죠. 그 시절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놀기도 했던 곳인데, 그 골목들의 예전 모습이 조금씩 살아 있더라고요. 세월이 흘러 예전 모양 그대로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옛날 흔적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에 딱 봤을 때 붉은 벽돌과 자연스러운 담쟁이가 너무 잘 어우러져 있었어요. 그 첫인상이 사실 되게 좋았습니다. 원래 제가 제일 좋아하던 게 담쟁이가 있는 집이었거든요. 내부에 들어가서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마당의 나무들도 상태가 너무 좋아서 사실 되게 기뻤어요. 집을 보면서 ‘야, 이거 제대로 된 물건 하나 나오겠는데’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노회찬재단 홈페이지에 공사에 참여한 현장 노동자분들의 이름을 파트별로 빼곡히 기록했습니다. 보통 건물이 완공되면 현장 노동자들의 흔적은 감춰지기 마련인데, 이번 현장에서 함께 비바람을 맞으며 벽돌을 쌓고 미장을 하던 동료 노동자들의 노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얼굴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처음에 철거할 때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요. 1차 철거는 집을 알아가는 과정이죠. 그러니까 처음에 그 집을 알려면 이것저것 뜯어봐야 구조를 알 거 아니에요? 저희는 그냥 1차 철거라고 하는데요, 그걸 하고 나면 이제 도면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면서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있어요.
그런데 1차 철거를 하러 들어갔더니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요즘에는 쓰지 않는 옛날 단열재 같은 것들이 막 나오잖아요. 가령 배관을 짚으로 엮어서 단열을 하고, 그 위에다가 석회를 발라서 고정해 둔 그런 흔적들이 다 남아 있는 거예요. 철거할 때 작업자들이 그걸 발견하면 되게 기쁘게 저한테 막 들고 와요. “선생님, 이런 게 있습니다!” 하고요. (웃음)
그리고 기존 천장을 내리는데, 그 안에 예전에 채워둔 톱밥 단열재가 있었거든요. 너무 오래된 집이다 보니까 톱밥을 포장했던 종이봉투가 다 삭아버린 거예요. 그 양이 바닥에 내려놨을 때 거의 무릎까지 올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았어요. 천장에 가득 차 있던 걸 한 번에 내리다 보니, 나중에는 작업자분들이 톱밥을 온통 뒤집어쓰기도 하셨죠. 그런데 그분들이 싫어하는 기색 하나 없이 너무 잘해주시는 거예요. 참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사실 이런 리모델링은 답이 정해져 있는 공사가 아니에요. 목표점은 있지만, 모든 걸 현장 상황에 맞춰서 풀어가야 하거든요. 하나의 길만 있는 게 아니라서 여러 가지를 같이 공유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저와 거의 20여 년을 같이 일하신 분들도 계시는데, 그렇다 보니 제가 ‘이건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라고 툭 던지면 그분들이 알아서 척척 정리해 주십니다. 그런 점이 참 편하고 좋죠.
노회찬은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꿈꿨습니다. 거친 건설 현장을 책임지시는 소장님만의 원칙이나 마음가짐이 있었을까요?
저는 사실 예전부터 작업하시는 분들한테 농담 삼아 하는 얘기가 있었는데요, 저는 ‘내 일처럼 일하라’는 말을 되게 싫어합니다. (웃음) 저는 제 일은 대충대충 하거든요. 왜냐하면 나 혼자 다 책임지면 되니까 오히려 그게 더 편해요. 내 일은 하다가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고, 더 하고 싶으면 더 해도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나한테 주어진 다른 사람의 일은 ‘남의 일’이 되잖아요. 저는 그래서 사람들이 남의 일을 더 열심히 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늘 ‘남의 일처럼 일하자’고 말합니다. 사실 제 집을 직접 짓기도 했었는데, 그때 누가 와서 ‘야, 네 집이니까 정말 잘 짓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대충 했어요. 가령 창문도 어디서 주워다가 그 사이즈에 맞춰서 대충 벽을 뚫고 달았죠. (웃음) 저랑 오래 일하셨던 분들은 호흡이 잘 맞아서, 정말 이 ‘남의 일처럼’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해 주십니다.
그리고 예전에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할 때도 직원들에게 항상 하던 얘기가 있어요. 직원들에게 인테리어는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거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예쁘고 세련되게 하는 게 좋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그런데 저는 직원들에게 ‘다음 사람이 잘 다룰 수 있도록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다음 사람이 편하게끔 만드는 것, 인테리어도 결국 배려예요. 건축주를 배려하든, 찾아오는 손님들을 배려하든 그 배려를 잘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게 디자인적으로도 좋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보다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먼저여야 해요.
못을 하나 박더라도 얕게 박을지 깊게 박을지 고민하게 되거든요. 제가 지나가다 못에 살짝 찔리는 건 상관없지만, 남이 찔리면 그건 문제가 되잖아요. 그래서 남이 찔리지 않게 하는 그런 배려가 중요합니다.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그다음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는 게 좋을까’를 많이 생각하라고 해요. 배려도 일종의 ‘남의 일’을 대하는 태도니까요.
노회찬의집은 9천 명이 넘는 시민들이 후원해주신 ‘벽돌기금’으로 지어졌고, 그것을 현장 노동자들의 손으로 직접 쌓아 올렸습니다. 시민들의 ‘마음’과 노동자들의 ‘기술’이 만난 셈인데요. 소장님이 보시기에 이 집의 어떤 구석이나 마감에서 이러한 따뜻한 ‘만남의 흔적’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을까요? 방문객들이 유심히 봐주었으면 하는 포인트가 있다면요?
저희가 리모델링을 하면서 예전 집의 벽체나 천장 같은 곳들을 그대로 살린 부분들이 많아요. 기존 것을 살린다는 게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놔두는 게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예전 벽을 그대로 살린다고 하면, 일을 안 한 게 아니라 오히려 새로 세우는 벽보다 훨씬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벽을 갈아내기도 해야 하고, 먼지도 털어내고, 조금씩 깎아내면서 불안한 부분들을 정리해야 하죠. 또 약한 부분들은 덧대서 보강도 해줘야 해요.
그래서 지금 남아 있는 벽돌이나 천장 부분을 보시면 요즘에는 잘 안 쓰는 옛날 흔적들이 되게 많습니다. 천장 같은 곳도 보면 거푸집을 대서 만들었던 송판 자국이 그대로 있어요. 사실 지금 그렇게 작업하려면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서, 요즘은 그냥 일반 합판을 붙여서 끝내거든요. 그런 소소한 재미들이 여기저기 구석구석 숨어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1층에서부터 쭉 올라가다 보면 과거부터 현재까지 건물의 역사랄까, 공사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보여요. 1층은 거의 옛집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새것과 헌것이 함께 어우러진 중간 단계이고, 3층에 올라가면 온전히 새로운 공간이 펼쳐지죠. 그런 변화를 한 번씩 느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 노회찬의집은 청소노동자, 봉제노동자, 이주노동자, 그리고 수많은 ‘6411 투명인간’들이 비바람을 피해 편히 쉬어가고 서로 연대하는 공간으로 쓰이게 됩니다. 현장의 마지막 불을 끄고 나오신 소장님으로서, 이 공간을 가득 채울 시민들과 이 집을 함께 땀 흘려 지어준 동료 노동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사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인간관계가 매끄러운 편은 아니었어요. 사람들한테 약간 까다롭게 구는 면이 많거든요. 제가 일을 하면서 이것저것 귀찮게 많이 굴고 요구 사항도 많았는데, 대부분 그걸 정말 묵묵하게 다 이해해 주시고 따라주셨습니다. 사실 너무 고마워요.
그리고 어떤 분들은 저희 팀원이 아닌데도, 제 친구 같은 사람들이 자기도 와서 돕고 싶다며 실제로 자원봉사를 하러 오신 분들이 꽤 있었어요. 그래서 노회찬의집을 지은 노동자들 명단을 다시 한번 잘 정리해서 재단에 드리려고 해요. 지나가며 툭 한마디씩 보태주는 것도 봉사고, 잠깐씩 무거운 걸 같이 들어주는 것도 다 봉사잖아요. 그중 어떤 분은 자기가 와서 꼭 힘을 보태고 싶다며, 직장을 다니니까 주말에만 와서 조금씩 일하면 안 되냐고 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특히 설계해주신 분들께도 감사해요. 시공과 설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잖아요. 시공팀은 설계를 바탕으로 일하니까요. 사실 현장에서는 설계팀과 시공팀 사이에 조율 과정에서 갈등이 굉장히 많을 수 있어요. 설계하시는 분들은 자기 의도대로 안 나오면 속상하고, 시공팀은 현장 현실과 맞지 않는 도면이 나오면 난감하니까요. 결국 현장에 나와서 직접 보고 하나씩 해결해야 하는데 서로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번 설계팀은 그런 부분을 정말 잘 조율해 주셨어요. 그래서 되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장에 자주 나오셔서 다 이해해 주시고, 서로 상의해가며 고쳐나갔던 그 과정들이 참 좋았습니다.
끝으로 노회찬의집을 이렇게 짓고 나서 드는 지금의 마음, 혹은 이 공간을 이용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노회찬 의원님 때문에 제 생애 처음으로 ‘나도 정당 가입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나서 혼자 운 적이 있습니다. ‘가입하겠다는 약속도 못 지켰는데 벌써 돌아가셨네’ 하면서요……. 노회찬 의원님은 저한테 정말 소중한 정치인 중 한 분이셨고, 마음 깊이 존경하는 분입니다. 정말 겸손하게 서민들한테 다가가고, 가식 없는 그 모습들이 참 좋았습니다.
노회찬의집도 누구나 와서 노 의원님을 추억하며 그냥 편하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며칠 전 가봤더니 동네 주민 한 분이 편하게 커피를 마시고 계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는데 제 마음이 참 좋았습니다. ‘노회찬의집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참 잘해주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냥 누구나 편하게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벽도 없는, 문이 있지만 언제나 열려 있는 ‘문이 없는 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