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섦이 익숙함으로 바뀌는 시간
(가)6411 노회찬의 집 <함께하는 사람들> 인터뷰
이은자 강서퍼스트잡지원센터 센터장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이강준 노회찬재단 사업기획실장
노회찬재단 회원들을 위해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발달장애 자녀를 둔 엄마이고요. 강서구에서 발달장애인 취업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난 2013년에 강서장애인부모회를 설립한 후 본격적인 부모운동에 나서며, 서진학교 개교 및 여러 발달장애인 관련 정책 활동에 참여해 오셨습니다. 과정에서 힘드신 일도, 보람 있는 일도 너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딸이 장애인이란 걸 수용해야 되는데, 그게 좀 많이 힘들었어요. 그다음에는 딸이랑 어떻게 살아야 될 지를 고민하면서 특수학교를 만드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학교를 만들었더니 졸업하고 살아가야 하는데, 그거를 또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누가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런 고민들 때문에 힘들었던 것 같아요.
보람은 장애인부모회를 만들었을 때에요. 동병상련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반드시 부모회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직 장애 수용이 안 됐거나, 아니면 장애 수용은 됐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거나, 이럴 때 부모회에 가면 위로를 받고, 뭔가 힘을 얻어요. 옛날의 저처럼 많은 ‘은자들’이 있어요. 부모회에서 위로를 받고, 힘을 얻고, 나를 지지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오는 후배 엄마들을 보면 보람이 있어요. 그리고 특수학교를 만들고 물론 다니는 사람들도 행복해하지만, 그 학교가 가지는 상징적인 이미지가 있더라고요. 우리 사회가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데, 해보지 않았을 때는 염려가 많잖아요. 주민들이 특수학교에 대해 우려가 많았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괜찮다고, 생각이 바뀌었다는 얘기를 해 주세요. 사람들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껴요. 그리고 정말 우리 발달장애인들이 변하는 걸 느껴요.
발달장애인이 변하는 걸 느끼신다고 하셨는데요. 예를 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지난주에 성북에 있는 학교에 갔다 왔어요. 지금 여자분 둘이 3년째 교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요. 처음에 일을 한다고 갔을 때, 정말 일을 할까 싶은 거예요. 한 사람은 걷는 게 불편하고, 한 사람은 바짝 마르고 정말 건강이 좋지 않아 보였어요. 누가 봐도 당장 침대로 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일을 한다는 거예요. 제가 발달장애인을 그렇게 많이 보고, 또 부모이기도 한데, 너무 중증인 케이스였어요. 그래서 걱정이 많았는데, 그다음 해에 봤을 때 조금 나아졌어요. 근데 이번에 가서 봤는데 너무 많이 변한 거예요. 일단 신체가 너무 건강해졌고, 누가 봐도 약해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그 표정이라든가 사람을 응대하는 게 달라요. “대표님 오셨어요?”, 이렇게 얘기를 해 주는데, ‘우리 잘하고 있어요’, ‘대표님 와서 보세요’, 뭔가 이런 게 이 친구들한테 생긴 거예요.
우리 모두 누구나 돌봄과 교육, 그리고 일자리는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데요. 발달장애인이나 가족, 혹은 우리 공동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발달장애인들이 직업 생활을 하거나, 취미와 여가 프로그램을 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게 비장애인 조력자들이거든요. 국가가 그걸 시스템으로 만들어 놨어요. 조력을 하면 그만큼의 어떤 대가를 지불할 수 있게 시스템으로 만들어 놨어요. 발달장애인 중에 너무 돌발 행동이 심한 경우, 저희는 ‘어려운 행동’이라고 해요. 타인을 공격한다거나, 자신을 해친다거나, 이런 어려운 행동이 과하지 않은 사람들은 조력자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일상생활과 직업 생활이나 지역사회 이용이 가능하거든요.
그런데 조력자가 있어도 지역사회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어요. 처음에는 굉장히 낯선 존재니까, 발달장애인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데요. 함께 지내다 보면 그냥 자연스럽게 거부감이 없어진단 말이에요. 그런데 대부분은 아직도 기회가 없어요. 그게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가령 길거리에서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우리 다 그러잖아요. 그런데 나의 일상에 뭔가 내가 정말 많이 이해해야 될 것 같고, 그런 사람이 들어오는 거에 대한 장벽이 아직도 굉장히 크다고 많이 느껴요.
우리 친구들이 주민센터에 있는 헬스장에 가거든요. 처음에는 거기도 굉장히 어려웠어요. 근데 지금은 안 오면 기다린대요. 제가 바라는 건 딱 그 시간이에요. 안 오면 궁금해지는 그 시간. 누구나 처음에 낯설었다가 그다음에 낯섦의 시간이 지나고 ‘지난주에 왜 안 왔냐?’고 물어보신다는 거예요. 저는 딱 그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 시간은 우리만의 노력으로 할 수 없는 시간이거든요. 그러니까 상대방이, 지역사회가 해줘야 하는 시간인데 아직은 좀 그렇지 않아요. 그 시간만 주어지면 발달장애인의 어떤 특별함이나 개성이 비장애인으로 하여금 기분 좋게 하는 것들이 되게 많아요. 재미있고 그런 일들이 진짜 많아요. 근데 그건 같이 생활을 해봐야지 아는 거지요. 얼마 전에도 이 주민센터에서 맨날 만나는 그 할아버지를 NC백화점에서 만났는데, ‘나랑 같이 운동하는 친구인데 여기 왔냐?’고 그러시면서 너무너무 반가워했다는 거예요. 국가가 아무리 시스템을 잘 만들어 놔도 그걸 이용할 수가 없거나 그런 기회가 없으면, 그거는 무용지물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기회가 없는 게 좀 어려운 것 같아요.
낯섦이 익숨함으로 바뀌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이은자 대표님과는 지난 2022년에 노회찬재단 후원회원 함께데이에서 다큐영화 <학교가는 길>로 만난 후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노회찬재단 활동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나, 혹은 이런 건 좀 더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싶은 것이 있으신지요?
저는 <6411의 목소리> 연재가 인상이 많이 남아요. ‘그래 맞아 이런 사람도 있지’, ‘이런 일을 하는 사람도 있지’, 이렇게 생각하는 그런 시간이었어요. 그동안에는 있는지 몰랐던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하는 얘기,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일을 하고 있는데, 굉장히 결이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있고,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고, 그다음에 어떤 세상이 됐으면 좋겠고, 이렇게 하는 게 다 비슷한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어떤 일을 하든지, 아니면 장애가 있건 없건 본인이 사회에 굉장히 필요한 존재이고, 인정받고 싶어 하고, 그리고 목소리를 계속 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또 ‘다들 어려운 것 같은데도, 어쩌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있지?’, 그런 생각이 저는 들었어요. 그 사람들이 하고 있는 그 일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멋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냥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그렇게 내세울 만한 직업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이런 걸 보면 그렇지 않은 거예요. 어떤 한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거기 있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6411의 목소리가 좋아요.
저는 이제 부모기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다거나 그럴 거잖아요? 저는 자식 일이니까. 그런데 자기도 힘들면서도 같이 뭔가를 하려고 하고, 도와주려고 하고, 이런 게 정말 대단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본인들이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거나, 권력이 많거나 그런 사람들이 아닌데도 저렇게 하시는구나, 저분들은 누가 시켜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세상에는 참 멋있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해요.
노회찬의 집 벽돌기금 모금 캠페인 초기에 선생님께서 함께 해 주셔 큰 힘을 받았습니다. 노회찬의 집을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 제일 처음에 좀 어떤 생각이 좀 드셨나요?
노회찬 의원님 생각하면 국회의원 하실 때 도움받은 것도 있고, 토론장이나 이런 데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우리나라에 저런 사람이 있어서 한참 막 정말 좋아하려고 할 때, 이렇게 이별을 한 그런 상태여서 사실 그분에 대해서 잘 알거나 그러진 않아요. 근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분을 잘 알던 사람이건, 그분에 대해서 저처럼 조금 아는 사람, 혹은 전혀 모르는 후배들 누구나 뭔가 고민하고 결정해야 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그 역할을 해야 할 곳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회찬의 집을 만든다고 해서, 그런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저는 처음에 생각했거든요.
예를 들면, 내가 너무나 어려운 일이 있거나 그럴 때 노회찬의 집을 간다거나, 아니면 내가 정말 고민해서 뭔가를 선택해야 한다거나 할 때도 가는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 저는 항상 어떤 결정을 할 때 ‘누구라면 어떻게 결정할까?’, 항상 그거를 생각하거든요. 내가 뭔가를 결정할 때, ‘이쪽으로 가면 분명히 나한테 분명히 더 이익이야’, ‘저쪽으로 가면 남들은 칭송할 수 있으나 나한텐 너무 힘든 일이야’, 이럴 때 ‘누구라면 어떻게 결정할까?’ 그러면 그냥 답이 나와요. 지금 우리 세대나 젊은 사람들한테는 그런 사람이 거의 없다고 생각해요. 노회찬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우리한테 그런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그분은 지금 안 계시지만 그 정신을 고스란히 간직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어떤 물리적인 공간이 상징적으로 생긴다는 딱 그런 의미로 느껴졌어요.
지금 한창 노회찬의 집 공사를 진행하고 있고, 가을에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노회찬의 집에서 이런 일을 하면 좋겠다는 제안이나 기대가 있으시신지요?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내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잖아요. 어떻게 목소리를 내야 되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자기 주장을 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그리고 그걸 알지만 또 이게 좀 확장성이 없는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집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노회찬 의원이 살아 있었으면 지금 어떻게 하셨을까를 진짜 생각했어요. 요즘 진짜 제일 많이 필요한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노회찬재단이 그 분의 정신과 역할을 잘 이어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런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노회찬의 집 벽돌 기금 모금 캠페인에 많이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은자
발달장애를 가진 지현이의 엄마. 2013년에 강서장애인부모회를 설립한 후 본격적인 부모운동에 나서며 서진학교 개교 및 여러 발달장애인 관련 정책 활동에 참여했다. 현재는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을 돕는 일자리를 발굴하고 훈련 기회를 제공하며, 고용 기업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낯섦이 익숙함으로 바뀌는 시간
(가)6411 노회찬의 집 <함께하는 사람들> 인터뷰
이은자 강서퍼스트잡지원센터 센터장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이강준 노회찬재단 사업기획실장
노회찬재단 회원들을 위해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발달장애 자녀를 둔 엄마이고요. 강서구에서 발달장애인 취업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난 2013년에 강서장애인부모회를 설립한 후 본격적인 부모운동에 나서며, 서진학교 개교 및 여러 발달장애인 관련 정책 활동에 참여해 오셨습니다. 과정에서 힘드신 일도, 보람 있는 일도 너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딸이 장애인이란 걸 수용해야 되는데, 그게 좀 많이 힘들었어요. 그다음에는 딸이랑 어떻게 살아야 될 지를 고민하면서 특수학교를 만드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학교를 만들었더니 졸업하고 살아가야 하는데, 그거를 또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누가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런 고민들 때문에 힘들었던 것 같아요.
보람은 장애인부모회를 만들었을 때에요. 동병상련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반드시 부모회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직 장애 수용이 안 됐거나, 아니면 장애 수용은 됐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거나, 이럴 때 부모회에 가면 위로를 받고, 뭔가 힘을 얻어요. 옛날의 저처럼 많은 ‘은자들’이 있어요. 부모회에서 위로를 받고, 힘을 얻고, 나를 지지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오는 후배 엄마들을 보면 보람이 있어요. 그리고 특수학교를 만들고 물론 다니는 사람들도 행복해하지만, 그 학교가 가지는 상징적인 이미지가 있더라고요. 우리 사회가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데, 해보지 않았을 때는 염려가 많잖아요. 주민들이 특수학교에 대해 우려가 많았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괜찮다고, 생각이 바뀌었다는 얘기를 해 주세요. 사람들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껴요. 그리고 정말 우리 발달장애인들이 변하는 걸 느껴요.
발달장애인이 변하는 걸 느끼신다고 하셨는데요. 예를 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지난주에 성북에 있는 학교에 갔다 왔어요. 지금 여자분 둘이 3년째 교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요. 처음에 일을 한다고 갔을 때, 정말 일을 할까 싶은 거예요. 한 사람은 걷는 게 불편하고, 한 사람은 바짝 마르고 정말 건강이 좋지 않아 보였어요. 누가 봐도 당장 침대로 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일을 한다는 거예요. 제가 발달장애인을 그렇게 많이 보고, 또 부모이기도 한데, 너무 중증인 케이스였어요. 그래서 걱정이 많았는데, 그다음 해에 봤을 때 조금 나아졌어요. 근데 이번에 가서 봤는데 너무 많이 변한 거예요. 일단 신체가 너무 건강해졌고, 누가 봐도 약해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그 표정이라든가 사람을 응대하는 게 달라요. “대표님 오셨어요?”, 이렇게 얘기를 해 주는데, ‘우리 잘하고 있어요’, ‘대표님 와서 보세요’, 뭔가 이런 게 이 친구들한테 생긴 거예요.
우리 모두 누구나 돌봄과 교육, 그리고 일자리는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데요. 발달장애인이나 가족, 혹은 우리 공동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발달장애인들이 직업 생활을 하거나, 취미와 여가 프로그램을 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게 비장애인 조력자들이거든요. 국가가 그걸 시스템으로 만들어 놨어요. 조력을 하면 그만큼의 어떤 대가를 지불할 수 있게 시스템으로 만들어 놨어요. 발달장애인 중에 너무 돌발 행동이 심한 경우, 저희는 ‘어려운 행동’이라고 해요. 타인을 공격한다거나, 자신을 해친다거나, 이런 어려운 행동이 과하지 않은 사람들은 조력자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일상생활과 직업 생활이나 지역사회 이용이 가능하거든요.
그런데 조력자가 있어도 지역사회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어요. 처음에는 굉장히 낯선 존재니까, 발달장애인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데요. 함께 지내다 보면 그냥 자연스럽게 거부감이 없어진단 말이에요. 그런데 대부분은 아직도 기회가 없어요. 그게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가령 길거리에서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우리 다 그러잖아요. 그런데 나의 일상에 뭔가 내가 정말 많이 이해해야 될 것 같고, 그런 사람이 들어오는 거에 대한 장벽이 아직도 굉장히 크다고 많이 느껴요.
우리 친구들이 주민센터에 있는 헬스장에 가거든요. 처음에는 거기도 굉장히 어려웠어요. 근데 지금은 안 오면 기다린대요. 제가 바라는 건 딱 그 시간이에요. 안 오면 궁금해지는 그 시간. 누구나 처음에 낯설었다가 그다음에 낯섦의 시간이 지나고 ‘지난주에 왜 안 왔냐?’고 물어보신다는 거예요. 저는 딱 그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 시간은 우리만의 노력으로 할 수 없는 시간이거든요. 그러니까 상대방이, 지역사회가 해줘야 하는 시간인데 아직은 좀 그렇지 않아요. 그 시간만 주어지면 발달장애인의 어떤 특별함이나 개성이 비장애인으로 하여금 기분 좋게 하는 것들이 되게 많아요. 재미있고 그런 일들이 진짜 많아요. 근데 그건 같이 생활을 해봐야지 아는 거지요. 얼마 전에도 이 주민센터에서 맨날 만나는 그 할아버지를 NC백화점에서 만났는데, ‘나랑 같이 운동하는 친구인데 여기 왔냐?’고 그러시면서 너무너무 반가워했다는 거예요. 국가가 아무리 시스템을 잘 만들어 놔도 그걸 이용할 수가 없거나 그런 기회가 없으면, 그거는 무용지물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기회가 없는 게 좀 어려운 것 같아요.
낯섦이 익숨함으로 바뀌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이은자 대표님과는 지난 2022년에 노회찬재단 후원회원 함께데이에서 다큐영화 <학교가는 길>로 만난 후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노회찬재단 활동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나, 혹은 이런 건 좀 더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싶은 것이 있으신지요?
저는 <6411의 목소리> 연재가 인상이 많이 남아요. ‘그래 맞아 이런 사람도 있지’, ‘이런 일을 하는 사람도 있지’, 이렇게 생각하는 그런 시간이었어요. 그동안에는 있는지 몰랐던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하는 얘기,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일을 하고 있는데, 굉장히 결이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있고,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고, 그다음에 어떤 세상이 됐으면 좋겠고, 이렇게 하는 게 다 비슷한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어떤 일을 하든지, 아니면 장애가 있건 없건 본인이 사회에 굉장히 필요한 존재이고, 인정받고 싶어 하고, 그리고 목소리를 계속 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또 ‘다들 어려운 것 같은데도, 어쩌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있지?’, 그런 생각이 저는 들었어요. 그 사람들이 하고 있는 그 일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멋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냥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그렇게 내세울 만한 직업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이런 걸 보면 그렇지 않은 거예요. 어떤 한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거기 있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6411의 목소리가 좋아요.
저는 이제 부모기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다거나 그럴 거잖아요? 저는 자식 일이니까. 그런데 자기도 힘들면서도 같이 뭔가를 하려고 하고, 도와주려고 하고, 이런 게 정말 대단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본인들이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거나, 권력이 많거나 그런 사람들이 아닌데도 저렇게 하시는구나, 저분들은 누가 시켜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세상에는 참 멋있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해요.
노회찬의 집 벽돌기금 모금 캠페인 초기에 선생님께서 함께 해 주셔 큰 힘을 받았습니다. 노회찬의 집을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 제일 처음에 좀 어떤 생각이 좀 드셨나요?
노회찬 의원님 생각하면 국회의원 하실 때 도움받은 것도 있고, 토론장이나 이런 데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우리나라에 저런 사람이 있어서 한참 막 정말 좋아하려고 할 때, 이렇게 이별을 한 그런 상태여서 사실 그분에 대해서 잘 알거나 그러진 않아요. 근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분을 잘 알던 사람이건, 그분에 대해서 저처럼 조금 아는 사람, 혹은 전혀 모르는 후배들 누구나 뭔가 고민하고 결정해야 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그 역할을 해야 할 곳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회찬의 집을 만든다고 해서, 그런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저는 처음에 생각했거든요.
예를 들면, 내가 너무나 어려운 일이 있거나 그럴 때 노회찬의 집을 간다거나, 아니면 내가 정말 고민해서 뭔가를 선택해야 한다거나 할 때도 가는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 저는 항상 어떤 결정을 할 때 ‘누구라면 어떻게 결정할까?’, 항상 그거를 생각하거든요. 내가 뭔가를 결정할 때, ‘이쪽으로 가면 분명히 나한테 분명히 더 이익이야’, ‘저쪽으로 가면 남들은 칭송할 수 있으나 나한텐 너무 힘든 일이야’, 이럴 때 ‘누구라면 어떻게 결정할까?’ 그러면 그냥 답이 나와요. 지금 우리 세대나 젊은 사람들한테는 그런 사람이 거의 없다고 생각해요. 노회찬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우리한테 그런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그분은 지금 안 계시지만 그 정신을 고스란히 간직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어떤 물리적인 공간이 상징적으로 생긴다는 딱 그런 의미로 느껴졌어요.
지금 한창 노회찬의 집 공사를 진행하고 있고, 가을에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노회찬의 집에서 이런 일을 하면 좋겠다는 제안이나 기대가 있으시신지요?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내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잖아요. 어떻게 목소리를 내야 되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자기 주장을 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그리고 그걸 알지만 또 이게 좀 확장성이 없는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집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노회찬 의원이 살아 있었으면 지금 어떻게 하셨을까를 진짜 생각했어요. 요즘 진짜 제일 많이 필요한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노회찬재단이 그 분의 정신과 역할을 잘 이어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런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노회찬의 집 벽돌 기금 모금 캠페인에 많이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은자
발달장애를 가진 지현이의 엄마. 2013년에 강서장애인부모회를 설립한 후 본격적인 부모운동에 나서며 서진학교 개교 및 여러 발달장애인 관련 정책 활동에 참여했다. 현재는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을 돕는 일자리를 발굴하고 훈련 기회를 제공하며, 고용 기업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