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황 소장

2025-02-06



지나가다가 누구나 머무르고 싶은 공간


(가)6411 노회찬의 집 <만드는 사람들> 인터뷰

정기황 (시시한연구소 소장, 건축가)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이강준 노회찬재단 사업기획실장




먼저 노회찬재단 회원들을 위해 본인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건축가입니다. 건축 설계도 하고요, 주로는 도시 관련 연구와 지역사회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큰 정체성은 건축가입니다.


시시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연구소 이름이 심상치 않습니다. (웃음) 연구소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생각하고 계시는 것처럼 ‘시시한 것만 하는... 쉬운 곳’이라고, 사람들에게 연구가 쉽게 받아들여질 원해서 지은 이름입니다. 의미는 ‘시민(市)과 도시(市)는 크다(瀚)’의 약자로 시민이 필요로 하는 실천적 도시 연구를 하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담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쉼터 <꿀잠>이나 문화예술공간 <미인도> 등 다양한 공공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해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사회운동과 건축 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지금도 함께 하고 있는 ‘문화도시연구소’의 처음 시작이 태백시의 철암이라는 폐탄광촌 프로젝트였습니다. 탄광촌이 폐쇄되면서 진폐증 환자분들이나 어렵게 사시는 분들만 아주 적은 인원이 살고 있었고, 동네가 되게 열악한 곳이 되었어요. 특히나 연세가 많으신 독거노인분들의 주거가 워낙 열악하니까, 그분들의 집을 지어주는 일을 시작하면서 그걸 계기로 법인이 만들어졌어요. 그전부터 준비는 했는데 처음 집을 지은 게 2002년입니다. 제가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도 같이 하고 있는데요, 그게 가장 큰 계기인 것 같습니다. 


노회찬 의원과의 개인적인 인연이나, 추억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2000년대 후반 진보신당 시절 몇 번 당원으로서 만나 술도 마시고 그랬습니다. 그때만 해도 술집에서 담배도 피우던 시절이었죠. (웃음) 어쨌든 이런 정도 관계인데, 추억이라고 한다기보다는 이런 정도 급의 정치인을 만나서 뭔가를 얘기하는 건 처음이었죠. 그냥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하면서 그냥 일상 대화를 하는 거잖아요. 저는 ‘이런 정치인도 있구나’,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해봤던 것 같아요. 

당시 도시 얘기를 좀 했었어요. 도시 공부를 하고 계셨던 것 같아요. 정치하는 사람이 저런 걸 공부한다고? 되게 되게 신기했었어요.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진짜 들었어요. 그게 노회찬 의원에 대한 각인된 첫 인상이에요. 정치적으로도 뭔가를 하려고 하면 저런 공부도 하고, 그냥 소탈하게 뭔가를 얘기하는 사람이구나, 라는 게 첫인상이고, 그 인상이 지금까지 쭉 오는 것 같아요.


노회찬의 집을 만든다는 얘기를 처음 들은 게 언제죠? 그리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무슨 운동을 한다기보다는 노회찬을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네와 집이 노회찬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그냥 보자마자 ‘노회찬이 있을 만한 집이야’, ‘있을 만한 공간이야’, 그런 게 느껴지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게 저는 1번이었어요.


창신동 부지를 처음 마주하시고, 노회찬 느낌이 드셨나요?

창신동 집을 보고, 딱 그 생각이 들었어요. 동네도 그렇고, 집도 그런 느낌이었어요. 일단 일상적인 소탈한 공간이에요. 꼬불꼬불 들어가는 골목부터 집에 들어갔을 때까지. 집도 보통의 대기업들처럼 기념비적인 공간이라는 느낌보다는 공간적으로 따뜻한 느낌이구요. 기본적으로 사람 사는 집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일상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하고도 대화할 것 같은 소탈한 집. 사람이 오래 살았어도 사람 사는 느낌이 안 드는 집들이 있거든요. 예를 들면 아파트는 20년, 30년 살아도 그런 느낌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창신동 집을 처음 마주했을 때, 노회찬을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얘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 같은데요. '노회찬의 집'을 건축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먼저 지난번 이탄희 변호사가 인터뷰에서 얘기한 ‘너무 슬프지만 않은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200% 동의 하구요. (웃음) 지나가는 사람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공간이 크고, 문이 크다고 열려있는 공간이 아니에요. 사실 열려있어도 조금 멈칫멈칫하는 데가 있어요. 대표적으로 검찰청 같은 데는 문도 크고 열려있어서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그렇게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데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공간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남의 집이지만, 길 가다가 그냥 쉽게 앉아 있다가 갈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집 앞에 이렇게 앉아 있으면 누군가가 물이라도 한 잔 줄 것 같은, 줄 수 있는 느낌을 가진 개방적인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네에 살거나, 그냥 길을 지나치는 사람이 쉽게 들어가서 앉아보고 싶고, 들어가 보고 싶고,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말씀하신 '열린 공간'은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지금의 차고 있는 곳의 벽을 없애고 뚫려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거죠. 그리고 1층까지 10단 정도 되는 계단이 있고, 시원하게 연결해서 뒤편의 정원을 여는 거죠. 그것만 열려있어도 지나다니는 사람한테는 인지하는 방식이 달라져요. 벽이 있을 때랑 뚫려 있을 때랑 사람들이 인지하는 방식이 달라요. 그리고 앉아 있을 곳이 있고, 나무 그늘이 있으면, 어떤 사람이든 그냥 앉아보고 싶어 하는 곳이 되는 거잖아요. 지금 한국의 집들이 그런 걸 안 하는 거죠. 저는 한국 집들이 되게 자폐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자기만 알고 있으니까. 자기만 알고 폐쇄해 놓으니까, 점점 더 그게 마치 개인의 권한이고, 그렇게 해야 하는 것처럼 사회가 만들어가고 있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소장님이 그리는 건축, 혹은 도시는 어떤 모습인가요? 

저는 사실 건축 설계를 워낙 좋아해서 시작한 일인데요. 한국에서는 그걸 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늘었어요. 그래서 학교에서 연구와 교육을 하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한국처럼 건축이나 도시 계획하는 사람이 장사꾼에 가깝게 취급받는 나라는 아마 없을 거예요. 적어도 OECD 국가에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회적 지위가 이렇게 낮은 나라 없을 것 같아요.

건축가가 사회적 지위가 낮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건축이 그만큼 사회적 역할을 안 한 것도 있다는 거죠. 사회적 역할을 해야 사회적 지위가 생기는 거잖아요. 기본적으로 그런 걸 안 해본 사회구나. 그러니까 근대 건축의 태생이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거니까, 일제에 부역하고, 군사 정권에 부역하던 자들이 계속 살아남아서 만들어 놓은 부역의 역사. 지금은 국가에 기대어, 국가가 뭔가를 하면 거기에 그냥 기생하는. 저는 건축과 도시라는 게 지금으로서는 사회적 역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에요.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신 대목이 인상적인데요.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떤가요?

건축이 공적 영역에 있다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있어요. 그러니까 내 집이 있다고 하면, 한국은 온전히 사적 소유라고 생각해요. 근대 건축물이라는 건 짓자마자 무조건 도시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어요. 지역의 일부가 되고, 마을의 일부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공적 영역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거죠. 건축가는 사실 건축물을 어떻게 지역하고 마을하고 도시하고 어떻게 만날 건가를 설정해야 하는 거잖아요. 더 크게는 자연하고 어떻게 만날까를 설정해야 하는 거고요. 그렇다면 건축가는 공적 마인드가 기본 탑재되어 있어야 되는 거죠. 그냥 단순하게 개인을 충족시키는 일이 아니에요. 돈 주면 하면 되는 일, 그냥 시키는 대로 원하는 대로 하는 사람이면 안 되는 거죠. 그러면 마을, 지역, 도시는 엉망이 될 수밖에 없는 거니까요. 

서구 사회는 그 인식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죠. 역사적으로 비트루비우스라는 사람이 있는데요. 로마 사람인데, <건축십서>라는 책을 썼어요. 첫권이 일종의 건축 철학을 담고 있어요. 맨 앞에서 하는 애기가 ‘건축가는 공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걸 지킬 수 있는 사람’ 이어야 한다고 강하게 얘기합니다. 철학을 배워야 한다. 그냥 기술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를 기원전부터 한 거에요. 한국은 그게 없단 말이에요. 심지어 정부도 공적인 역할을 포기한 셈이죠. 공적자산을 정부가 소유한 사적 자산처럼 사용하고 있죠. 이런 의미에서 한국은 퍼블릭이 없는 나라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노회찬재단 회원들과 나누고 싶은 것을 인사말을 겸해 부탁드립니다. 

노회찬의 집 건립은 요즘처럼 어지러운 시국에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노회찬만큼 정치를 한 사람이 있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노회찬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좋은 정치인들이 나오려면, 이런 사람들을 잘 대해줘야 한다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있어요. ‘잘했어’, ‘훌륭하다’라고 해줘야 더 나은 정치인들과 정치문화가 생길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이게 결국은 도시적으로도 아까 말한 커먼즈의 공적 영역을 넓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시 곳곳에 우리가 갈 수 있는 이런 공간과 우리가 지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들을 넓혀가는 거가 필요하고, 지금 절실한 것 같아요.

큰 방향에서 동의하면 노회찬의 집 같은 곳을 넓혀가는 게, 결국은 내가 살 길과 내가 디딜 바닥들을 넓혀가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노회찬재단 회원이 9천 명 아니라, 지금 90만 명이 돼도 모자랄 판인데, 9만 명이 됐으면 좋겠어요. (웃음) 진심입니다. 그 정도는 돼야지요. 노회찬의 집 건립에 함께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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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황

각 시대의 문화가 새겨진 공간과 도시를 계보학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이며, 이를 기초로 공간을 설계하는 건축가다. 근대 서울의 도시 건축 적응 과정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주)시시한연구소와 (사)문화도시연구소에서 사회적 소외 계층에 건축 서비스(공간)를 제공하는 ‘집짓기’, 아동·청소년 건축 교육 프로그램인 ‘건축학교’, 장소인문학적 도시 건축 연구 등을 하고 있다. 도시 사회운동이자 커먼즈 운동인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의 공동대표(2015~21), 지역 문화예술 커뮤니티인 공유성북원탁회의의 공동위원장(2017)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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