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의 눈‧귀‧입으로 보고, 듣고, 말했으면...
(가)6411 노회찬의 집 <만드는 사람들> 인터뷰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제1회 노회찬상 '인권과 평등상' 수상자)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이강준 노회찬재단 사업기획실장
노회찬재단 회원들을 위해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2018년도 12월 10일 공공기관 서부발전 하청인 한국발전기술에 일하러 간 아들이 원‧하청이 안전을 방치한 결과로 억울하게 산재사망 사고를 당했습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위해 정부와 싸웠고 어렵사리 원만한 합의를 이끌었습니다. 그 이후에 김용균재단을 만들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어제(12월 11일)가 김용균 6주기였는데요. 시간으로 덮을 수 있는 아픔이 아닐 것 같습니다.
유족들은 명절 때나 추모 기간이 다가올 때마다 마음이 까라지면서 몹시 힘들거든요. 그 와중에 추모기간 행사를 일주일 동안이나 하는데 매일 발언 준비해야하는 게 많이 부담스러웠어요. 이번에는 현장 추모제, 마석 추모제, 토론회 이렇게 3가지로 비교적 간소하게 진행했습니다. 이전보다 행사가 줄어든 만큼 참석인원도 덜 왔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셔서 크게 위로를 받았어요. 용균이 묘가 있는 곳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노회찬 의원 모신 곳이 계시니까, 항상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요. 하다못해 눈길 한번이라도 찍고 가게 되죠. 왜 우리 사회는 잘못한 사람들은 더 떵떵거리고 살고, 심성이 괜찮은 사람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조건일까, 그런 게 마음이 무겁게 다가오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사장님께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 앞장서시고, 김용균재단을 통해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최근 김용균재단이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보통의 재단은 추모나 장학 사업을 많이 하는데요. 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용균이 재단을 만드는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기리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김용균재단 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노동 민주화가 되길 바라고 궁극적으로는 생명안전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산재로 새로운 유족이 생길 때마다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고요. 일하는 사람들이 위험하지 않도록, 노동안전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을 꾸준히 해야겠다는 소망과 이런 역할은 제가 잘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중요한 건 아직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이 한군데도 안 됐잖아요. 자회사는 또 다른 하청 구조밖에 안 되는데 무언가 해준 것처럼 정부와 기업이 농간을 부린 거라고 봅니다. 이렇게 위험한 현장을 해결하려면 비정규직 모두 정규직 전환 시키면 해결되는 일인데 그때 발전 5사 모두 정규직 전환하겠다고 합의를 해놓고도 지금까지 정부의 미지근한 태도로 이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윤석열이 국민 72%가 찬성한 중대재해처벌법을 악화시키려고 계속 물밑작업을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산재 피해자들이 달려가서 막아서서 지금은 5인 이상 사업장까지 법에 적용 되었습니다. 빨리 국민의힘 정권이 기조를 바꾸거나 없어져야 우리가 노동안전이나 시민안전을 위해 조금 더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 위험의 외주화는 위험의 이주화로 전이된 상태까지 급진되었습니다. 이처럼 비정규직은 사회의 반드시 없어져야 할 암 같은 존재입니다. 저희 재단은 노동자가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을 걱정 없도록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만드는 게 제일 큰 목적입니다.
노회찬 의원, 혹은 노회찬재단과의 개인적인 인연이 있으신지요?
노회찬 의원님은 TV에서 많이 봤어요. 인상이 워낙 좋으시죠. 그런데 하는 일이 어떤 건지가 중요한 거잖아요. 사실 제가 아들 사고 전에는 잘 몰랐어요. 어떤 입장인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이런 것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여건이 아니어서... 아들 사고가 나고 합의한 상태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운동을 정의당 강은미 의원과 정의당 당원들이 모두 나서며 같이 하는 것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정의당이 노동안전에 대해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 ‘노회찬 재단이 고인의 유지를 받으려고 이처럼 애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제1회 노회찬상을 수상했는데요. 저는 그 당시 노회찬 재단이 있는지도 몰랐었어요. 그때는 사고 초기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다른 게 눈에 안 들어왔어요. 근데 갑자기 노회찬상을 주신다고 해서 노회찬재단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우리 사회에서 나 개인은 미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투쟁 성과를 높이 사서 이렇게 큰 상을 주는구나, 되게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은 자식 죽고 해결을 위해 당연히 한 것뿐인데 이런 상을 받아야 받는 게 맞는 건가? 만약에 이런 슬픈 일이 없었으면 얼마나 행복하고 좋을까? 벅찬 기분으로 엄청 기뻐했을 텐데... 이후에 또 노회찬재단에서 경희대 후마니티스 특강(노동 존중사회와 6411의 목소리)에 저를 초청해 학생들과 소통의 자리 마련해 주면서 노회찬 재단이 자꾸 저에게 훅훅 다가오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아직 6411번 버스를 한 번도 못 탔어요. 저희 집이 영등포인데 신도림 역에만 가도 그 차가 거기를 지나가요. 저 차를 언제 한 번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노회찬 그분의 얘기를 들어보면, 새벽 4시 첫 버스타고 출근해서 청소하는 노동자들, 투명인간 취급하는 노동자들 얘기를 드러내려고 노력하신 거잖아요. 이 사람들이 최저임금 받아가면서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회가 이들에게 마치 최하수준급으로 낮게 취급해도 된다고 사회가 인식하게 만드는 게 가장 큰 잘못이라는 것을 6411 투명인간이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해놓고 노동자들에게만큼은 위험한 현장과 노동강도가 높거나 과로로 목숨을 담보해야 할 만큼 비정규직들에게 차별적 처우를 만든 사회가 절대로 올바른 민주주의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없었습니다.
노회찬재단은 매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에 6411 새벽첫차를 타는데요. 내년에 함께 타시면 좋겠습니다.(웃음)
네, 꼭 한번만이라도 타보고 싶었는데 잘 됐네요. 미리 연락주시면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저희 집 주변에도 매일 청소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제가 운동한다고 5시에 일어나서 나오면 매번 먼저 나와 계시는데 도대체 잠도 제대로 못자고 얼마나 빨리 출근하면 이렇게 이른 시간에 청소하고 계실까 항상 궁금했어요.
노회찬의 집을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 제일 먼저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저희 김용균재단도 전세로 있다가 계약기간이 끝나서 가산디지털역 근처로 자리를 마련해 옮겼습니다. 항상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옮기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자리를 잡으니 내심 되게 뿌듯했거든요. 이사 다닐 걱정 없이 이후부터는 하고자 했던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잖아요. 노회찬 재단도 쉽진 않겠지만 저희처럼 자리를 잘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내년 여름 노회찬 7주기를 앞두고 개관할 노회찬의 집과 노회찬재단에 특별히 기대하고 계신 것이 있으신지요?
이주노동자가 우리나라에 엄청나게 많이 들어왔는데요, 아리셀 화제사건 속을 들여다보면 노동자들과 사측과의 계약 자체가 없어요. 일용직 일자리로 하루하루 구하는 사람들처럼, 그냥 필요한 인력을 실어 가서 일하게끔 만들고. 월급은 받는데 사장이 누군지도 몰라요. 계약이 없으니까. 4대 보험도 없고, 사회 곳곳에 이주 노동자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사회가 이주민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대책 논의가 없는 것을 보면 그냥 필요한 인력만 갖다 쓰고 버리는 심산이 아닌가. 아마 지금도 노회찬의원님이 살아계신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노동환경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뭔가를 행동하지 않았을까요?
노회찬재단은 노회찬의원님의 입장에서 행동을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정규직들이 엄청 많이 죽고 있는 가운데 이주노동자들 죽음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약자의 손을 잡아주고. 정치인들이나 정부는 이주노동자나 5인 미만 사업장 이런 열악한 곳에는 아예 법 적용도 안 되고, 관심조차 없어요. 아예 말 자체를 꺼내지 않아요. 여기가 가장 심각한 우리 사회의 최악임에도 불구하고 인권과 노동안전을 중시하는 우리조차도 이러함을 외면하면 안 된다는 기본적 양심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노회찬재단이 이런 것들, 그리고 우리 사회 비정규직들이 노동권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만들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우리가 앞으로 더욱 신경 써야 할 일들이 아닌가 합니다.
또 여성, 빈부 격차도 더욱 심화되어 있어서 큰일입니다. 특히 어떤 자료를 보니 ‘그 사회 구성원 중 일부가 무너지면 사회 전체가 무너진다’는 문구가 있더라고요. 지금까지 기업의 성장을 위해 그러니까 기업을 위한 정치를 해서 사회의 큰 구성원을 차지하는 천백만 이상의 비정규직들이 자연스레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조건을 만들었고 우리 사회 구조가 이렇게 희망이 꺼져가는 것 같습니다.
벽돌기금 모금 캠페인이 시작됐는데, 동료 시민들에게 참여의 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단체들이 엄청 많거든요. 이런 단체들이 안정적인 자리를 마련해서 사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진짜 필요하다 생각해요. 노회찬재단이 안정적으로 집을 마련해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더욱 안전해지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힘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준비한 질문은 끝났는데요. 추가로 하시고 싶은 말씀을 인사를 겸해 부탁드립니다.
제가 재단을 만든 취지는 비정규직이었던 청년 용균이가 피켓 든 이유를 찾는 것입니다. 고용이 불안정해 상시적 해고 우려에 놓여있었고 최저 임금으로 혼자 살기에도 빠듯한 지금의 청년들의 문제를 가장 시급하게 해결할 문제임을 용균이 참사로 인해 드러냈다고 봅니다. 그리고 용균이 이름에 먹칠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하고 모든 노동자들에게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노회찬재단에서 할 역할이 그런 거 아닐까요? 노회찬 그분의 입장에 서서 그분이 말하고자 했던 목소리, 그리고 그분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인권이 살아 움직이는 사회를 위한 활동을 하면 좋겠습니다. 사회가 안전해야 내 가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꼭 인지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노회찬의 눈‧귀‧입으로 보고, 듣고, 말했으면...
(가)6411 노회찬의 집 <만드는 사람들> 인터뷰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제1회 노회찬상 '인권과 평등상' 수상자)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이강준 노회찬재단 사업기획실장
노회찬재단 회원들을 위해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2018년도 12월 10일 공공기관 서부발전 하청인 한국발전기술에 일하러 간 아들이 원‧하청이 안전을 방치한 결과로 억울하게 산재사망 사고를 당했습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위해 정부와 싸웠고 어렵사리 원만한 합의를 이끌었습니다. 그 이후에 김용균재단을 만들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어제(12월 11일)가 김용균 6주기였는데요. 시간으로 덮을 수 있는 아픔이 아닐 것 같습니다.
유족들은 명절 때나 추모 기간이 다가올 때마다 마음이 까라지면서 몹시 힘들거든요. 그 와중에 추모기간 행사를 일주일 동안이나 하는데 매일 발언 준비해야하는 게 많이 부담스러웠어요. 이번에는 현장 추모제, 마석 추모제, 토론회 이렇게 3가지로 비교적 간소하게 진행했습니다. 이전보다 행사가 줄어든 만큼 참석인원도 덜 왔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셔서 크게 위로를 받았어요. 용균이 묘가 있는 곳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노회찬 의원 모신 곳이 계시니까, 항상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요. 하다못해 눈길 한번이라도 찍고 가게 되죠. 왜 우리 사회는 잘못한 사람들은 더 떵떵거리고 살고, 심성이 괜찮은 사람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조건일까, 그런 게 마음이 무겁게 다가오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사장님께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 앞장서시고, 김용균재단을 통해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최근 김용균재단이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보통의 재단은 추모나 장학 사업을 많이 하는데요. 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용균이 재단을 만드는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기리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김용균재단 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노동 민주화가 되길 바라고 궁극적으로는 생명안전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산재로 새로운 유족이 생길 때마다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고요. 일하는 사람들이 위험하지 않도록, 노동안전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을 꾸준히 해야겠다는 소망과 이런 역할은 제가 잘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중요한 건 아직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이 한군데도 안 됐잖아요. 자회사는 또 다른 하청 구조밖에 안 되는데 무언가 해준 것처럼 정부와 기업이 농간을 부린 거라고 봅니다. 이렇게 위험한 현장을 해결하려면 비정규직 모두 정규직 전환 시키면 해결되는 일인데 그때 발전 5사 모두 정규직 전환하겠다고 합의를 해놓고도 지금까지 정부의 미지근한 태도로 이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윤석열이 국민 72%가 찬성한 중대재해처벌법을 악화시키려고 계속 물밑작업을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산재 피해자들이 달려가서 막아서서 지금은 5인 이상 사업장까지 법에 적용 되었습니다. 빨리 국민의힘 정권이 기조를 바꾸거나 없어져야 우리가 노동안전이나 시민안전을 위해 조금 더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 위험의 외주화는 위험의 이주화로 전이된 상태까지 급진되었습니다. 이처럼 비정규직은 사회의 반드시 없어져야 할 암 같은 존재입니다. 저희 재단은 노동자가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을 걱정 없도록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만드는 게 제일 큰 목적입니다.
노회찬 의원, 혹은 노회찬재단과의 개인적인 인연이 있으신지요?
노회찬 의원님은 TV에서 많이 봤어요. 인상이 워낙 좋으시죠. 그런데 하는 일이 어떤 건지가 중요한 거잖아요. 사실 제가 아들 사고 전에는 잘 몰랐어요. 어떤 입장인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이런 것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여건이 아니어서... 아들 사고가 나고 합의한 상태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운동을 정의당 강은미 의원과 정의당 당원들이 모두 나서며 같이 하는 것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정의당이 노동안전에 대해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 ‘노회찬 재단이 고인의 유지를 받으려고 이처럼 애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제1회 노회찬상을 수상했는데요. 저는 그 당시 노회찬 재단이 있는지도 몰랐었어요. 그때는 사고 초기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다른 게 눈에 안 들어왔어요. 근데 갑자기 노회찬상을 주신다고 해서 노회찬재단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우리 사회에서 나 개인은 미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투쟁 성과를 높이 사서 이렇게 큰 상을 주는구나, 되게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은 자식 죽고 해결을 위해 당연히 한 것뿐인데 이런 상을 받아야 받는 게 맞는 건가? 만약에 이런 슬픈 일이 없었으면 얼마나 행복하고 좋을까? 벅찬 기분으로 엄청 기뻐했을 텐데... 이후에 또 노회찬재단에서 경희대 후마니티스 특강(노동 존중사회와 6411의 목소리)에 저를 초청해 학생들과 소통의 자리 마련해 주면서 노회찬 재단이 자꾸 저에게 훅훅 다가오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아직 6411번 버스를 한 번도 못 탔어요. 저희 집이 영등포인데 신도림 역에만 가도 그 차가 거기를 지나가요. 저 차를 언제 한 번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노회찬 그분의 얘기를 들어보면, 새벽 4시 첫 버스타고 출근해서 청소하는 노동자들, 투명인간 취급하는 노동자들 얘기를 드러내려고 노력하신 거잖아요. 이 사람들이 최저임금 받아가면서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회가 이들에게 마치 최하수준급으로 낮게 취급해도 된다고 사회가 인식하게 만드는 게 가장 큰 잘못이라는 것을 6411 투명인간이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해놓고 노동자들에게만큼은 위험한 현장과 노동강도가 높거나 과로로 목숨을 담보해야 할 만큼 비정규직들에게 차별적 처우를 만든 사회가 절대로 올바른 민주주의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없었습니다.
노회찬재단은 매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에 6411 새벽첫차를 타는데요. 내년에 함께 타시면 좋겠습니다.(웃음)
네, 꼭 한번만이라도 타보고 싶었는데 잘 됐네요. 미리 연락주시면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저희 집 주변에도 매일 청소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제가 운동한다고 5시에 일어나서 나오면 매번 먼저 나와 계시는데 도대체 잠도 제대로 못자고 얼마나 빨리 출근하면 이렇게 이른 시간에 청소하고 계실까 항상 궁금했어요.
노회찬의 집을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 제일 먼저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저희 김용균재단도 전세로 있다가 계약기간이 끝나서 가산디지털역 근처로 자리를 마련해 옮겼습니다. 항상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옮기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자리를 잡으니 내심 되게 뿌듯했거든요. 이사 다닐 걱정 없이 이후부터는 하고자 했던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잖아요. 노회찬 재단도 쉽진 않겠지만 저희처럼 자리를 잘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내년 여름 노회찬 7주기를 앞두고 개관할 노회찬의 집과 노회찬재단에 특별히 기대하고 계신 것이 있으신지요?
이주노동자가 우리나라에 엄청나게 많이 들어왔는데요, 아리셀 화제사건 속을 들여다보면 노동자들과 사측과의 계약 자체가 없어요. 일용직 일자리로 하루하루 구하는 사람들처럼, 그냥 필요한 인력을 실어 가서 일하게끔 만들고. 월급은 받는데 사장이 누군지도 몰라요. 계약이 없으니까. 4대 보험도 없고, 사회 곳곳에 이주 노동자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사회가 이주민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대책 논의가 없는 것을 보면 그냥 필요한 인력만 갖다 쓰고 버리는 심산이 아닌가. 아마 지금도 노회찬의원님이 살아계신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노동환경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뭔가를 행동하지 않았을까요?
노회찬재단은 노회찬의원님의 입장에서 행동을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정규직들이 엄청 많이 죽고 있는 가운데 이주노동자들 죽음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약자의 손을 잡아주고. 정치인들이나 정부는 이주노동자나 5인 미만 사업장 이런 열악한 곳에는 아예 법 적용도 안 되고, 관심조차 없어요. 아예 말 자체를 꺼내지 않아요. 여기가 가장 심각한 우리 사회의 최악임에도 불구하고 인권과 노동안전을 중시하는 우리조차도 이러함을 외면하면 안 된다는 기본적 양심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노회찬재단이 이런 것들, 그리고 우리 사회 비정규직들이 노동권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만들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우리가 앞으로 더욱 신경 써야 할 일들이 아닌가 합니다.
또 여성, 빈부 격차도 더욱 심화되어 있어서 큰일입니다. 특히 어떤 자료를 보니 ‘그 사회 구성원 중 일부가 무너지면 사회 전체가 무너진다’는 문구가 있더라고요. 지금까지 기업의 성장을 위해 그러니까 기업을 위한 정치를 해서 사회의 큰 구성원을 차지하는 천백만 이상의 비정규직들이 자연스레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조건을 만들었고 우리 사회 구조가 이렇게 희망이 꺼져가는 것 같습니다.
벽돌기금 모금 캠페인이 시작됐는데, 동료 시민들에게 참여의 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단체들이 엄청 많거든요. 이런 단체들이 안정적인 자리를 마련해서 사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진짜 필요하다 생각해요. 노회찬재단이 안정적으로 집을 마련해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더욱 안전해지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힘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준비한 질문은 끝났는데요. 추가로 하시고 싶은 말씀을 인사를 겸해 부탁드립니다.
제가 재단을 만든 취지는 비정규직이었던 청년 용균이가 피켓 든 이유를 찾는 것입니다. 고용이 불안정해 상시적 해고 우려에 놓여있었고 최저 임금으로 혼자 살기에도 빠듯한 지금의 청년들의 문제를 가장 시급하게 해결할 문제임을 용균이 참사로 인해 드러냈다고 봅니다. 그리고 용균이 이름에 먹칠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하고 모든 노동자들에게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노회찬재단에서 할 역할이 그런 거 아닐까요? 노회찬 그분의 입장에 서서 그분이 말하고자 했던 목소리, 그리고 그분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인권이 살아 움직이는 사회를 위한 활동을 하면 좋겠습니다. 사회가 안전해야 내 가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꼭 인지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